정신과 진단의 발전: RDoC(Research Domain Criteria)는 무엇일까요?🧿

앞선 포스팅에서 정신과 진단을 내리는 데에 중요한 진단기준인 DSM(Diagnostic Statistical Manual) ICD(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에 대해 다루어 보았는데요,

오늘은 보다 과학적으로 정신질환을 이해하고자 하는 접근방식인 RDoC(Research Domain Criteria)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존 정신과 진단체계의 한계

정신질환 진단은 기본적으로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나 ICD(국제질병분류)와 같은 진단 체계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러한 진단 체계는 보통 환자들이 기술하는 증상이나, 의사가 면담을 한 후 판단한 징후, 그리고 임상적인 경과에 많은 의존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조현병 환자라도, 증상이나 경과가 천차만별이고, 어떤 환자에게 듣는 약이 어떤 환자에게는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조현병의 대표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는 망상이나 환청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람을 조현병으로 섣불리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마약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아니면 뇌전증이나 다른 질환이 있지는 않은지 등의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는 이유는 정신과 진단이나 치료가 ‘생물학적 원인’, ‘기전’에 기반하고 있기보다는 ‘증상’, ‘징후’등의 현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면 ‘정신과도 눈에 보이는 진단 도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RDoC의 도입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7년 미국의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는 연구자들이 DSM 분류체계에 따라 연구를 하지 않고도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분류 체계인 ‘Research Domain Criteria(RDoC)’라는 개념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RDoC는 증상/징후라는 현상을 기반으로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기존의 진단 체계에서 벗어나, 정신 질환을 생물학적 특성을 중심으로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이해하고 분류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nimh.nih.gov/)

예를 들어, 이전의 정신의학 연구들은 DSM에 따라 분류된 ‘주요우울장애’ 환자들이 대뇌의 어떤 회로에 이상이 있는지 연구를 해서, 이러한 회로의 이상이 있는 사람을 ‘주요우울장애’로 분류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반면, RDoC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서는 전체 인구 집단을 어떠한 대뇌 회로의 과잉활성이 있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그 사이의 사람으로 스펙트럼을 나누고, 어떠한 회로의 과잉활성이 있을 때 어떤 현상이 나오게 되는지에 더욱 초첨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구를 하게 되면, 연구자는 특정 진단에 얽매이지 않고, 정신 기능의 여러 기본 구성 요소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구상할 수 있고, 여러 정신병리의 기저에 있는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과 행동적 현상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RDoC의 특징

기존의 DSM이나 ICD와 같은 분류 체계와 달리, RDoC는 정신질환을 독립적이고 고정된 범주가 아닌, 여러 신경회로가 관여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로에 과잉 활성이 있더라도, 표현형은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RDoC 분류 체계가 발달하게 되면 진단이나 증상에 따라 정신질환을 치료하기보다는, 신경 회로를 개선하는 방식으로 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질환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적인 치료도 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RDoC의 여섯 가지 주요 도메인

RDoC는 우리의 감정, 생각, 대인관계, 행동 조절 등의 다양한 정신적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정신 기능의 구성 요소들을 여섯 가지 주요 도메인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nimh.nih.gov/)

1. 부정적 감정성 (Negative Valence Systems)

부정적 감정성 도메인은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도메인입니다. 갑작스럽게 큰 소리를 들었을 때 놀라거나 두려웠던 경험을 떠올리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부정적 감정성 도메인은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두려움, 불안, 슬픔 같은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을 연구합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에서 이 도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2. 긍정적 감정성 (Positive Valence Systems)

긍정적 감정성 도메인은 행복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도메인입니다. 친한 친구와의 만남이나, 좋은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는 상황을 떠올리면 됩니다. 이 도메인은 특히 보상(상), 만족감, 동기 부여와 관련된 감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도메인의 연구를 통해 중독이나 충동적인 행동이 왜 생기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인지적 시스템 (Cognitive Systems)

인지적 시스템 도메인은 우리가 정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과정에 관한 도메인입니다. 이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이 집중하여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생각하는 과정이나, 물건을 기억하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이 도메인은 조현병이나 ADHD 같은 질환 연구에서 중요한 도메인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집중하고 기억하며 사고하는지 등을 연구합니다.

4. 사회적 과정 (Social Processes)

사회적 과정 도메인은 친구와 대화할 때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파악하거나 공감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사회적 상황에서 필요한 도메인입니다. 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처럼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데 중요하게 쓰입니다.

5. 각성 및 조절 시스템 (Arousal and Regulatory Systems)

각성 및 조절 시스템 도메인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절하고 상태를 유지하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자야 할 시간에 졸음이 오거나 긴장할 상황에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 같은 일들을 포함합니다. 이 도메인은 수면이나 스트레스 반응을 다루며, 불면증이나 조절되지 않는 감정(예: 충동 조절 문제) 등과 관련이 깊습니다.

6. 감각운동 (Sensorimotor)

최근 RDoC에 새롭게 추가된 감각운동 도메인(Sensorimotor Domain)은 우리 몸의 움직임과 감각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시스템에 관한 도메인입니다. 이는 신체 움직임, 자세, 균형, 감각을 통합하는 뇌의 기능을 다루며, 우리의 일상 행동과 신체적 반응에 큰 역할을 합니다. 이 도메인은 신체와 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행동, 감정, 사고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일부 정신질환, 예를 들어 조현병이나 자폐스펙트럼장애(ASD) 환자들은 감각운동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불안장애나 우울증에서도 움직임과 신체 감각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신 기능의 구성 요소를 6가지 도메인으로 구분하여서, 신경생물학적, 유전적, 행동적, 인지적 수준에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DSM 등의 기존의 범주적 접근법과는 다른, 보다 세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해졌습니다.

RDoC 연구의 한계

하지만, RDoC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DSM을 기반으로 한 진단체계에 더 익숙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해서 성과를 내려면 대규모의 연구가 필요하고, 연구 결과에 따른 치료법을 개발하려면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RDoC를 기반으로 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서, 개인별로 맞춤형 진단과 치료를 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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